흑자 1년 만에 적자 전환…자본잠식 지속
지그재그·쿠팡·쉬인까지…커머스 경쟁 과열

[오피니언뉴스=강혜린 기자] MZ세대 취향을 정조준한 ‘에이블리’가 여성 패션 플랫폼 최초로 지난해 거래액 2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광고비 급증에 따른 적자 전환, 자본잠식 지속, 종합몰 확장에 따른 정체성 약화, 중국 C커머스 공세 등 풀어가야 할 과제가 만만찮다.

플랫폼에서의 거래액은 시장 지배력을 가장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다. 거래액(GMV·Gross Merchandise Volume)은 플랫폼을 통해 결제된 상품·서비스의 금액을 모두 더한 값이다. 거래액이 높을 수록 많은 이용자가 해당 플랫폼에서 거래를 진행했다는 걸 말한다. 매출은 플랫폼의 수익을 말하는 지표로, 에이블리는 중계 수수료를 통해 얻은 금액을 말한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의 수수료 수입 등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대비 30% 늘어난 3343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이다. 연간 거래액은 2조5000억원인데, 이 중 2조원 이상이 대표 서비스 '에이블리'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여성 패션 플랫폼 최초 2조원 돌파로, 고물가 속 소비침체와 패션시장 불황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성과다. 지난해 12월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MAU·Montly Active User)는 94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은 적자를 기록하며 의아함을 낳고 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54억원으로 지난 2023년 첫 연간 영업흑자를 기록한 뒤, 1년만에 적자 전환했다. 이는 판매관리비가 2023년 1798억원에서 지난해 2641억원으로, 광고선전비가 230억원에서 423억원으로, 셀러 지원 확대에 사용되는 지급수수료도 1025억원에서 1614억원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대 매출에도 적자를 기록한 데에 에이블리 관계자는 매출이 성장하면서 관리비용도 함께 늘어났고, 특히 지난 2023년 론칭한 남성 패션 앱 ‘4910’과 일본 쇼핑 앱 ‘아무드’ 사업 확장으로 마케팅 비용이 많이 지불됐다는 설명이다.

객단가·수익성 ‘지그재그’ 우위… 경쟁 구도 심화
MZ세대의 소비력은 기대 이상이다. 상대적으로 소비력이 낮은 1020 중심의 패션 플랫폼이 조 단위의 거래액을 기록했다는 데는 큰 의미가 있다. 이 기세를 이어 에이블리는 지난해 12월 중국 알리바바로부터 1000억원을 투자 받으면서 기업가치는 3조 원으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첫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 등극과 더불어 연속된 호재다.
에이블리와 비슷한 성격의 여성 패션 플랫폼에는 ‘지그재그’가 있다. 지그재그는 지난 2021년 카카오에 인수되고 카카오스타일이 운영 중이다. 카카오스타일도 에이블리에 이어 지난해 2조원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매출은 20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80억 원을 내면서 4년 연속 이어오던 적자 흐름을 끊어냈다. 후발주자인 에이블리에게 밀리는듯 했지만, 바짝 쫓아오는 모습이다.
일본 슬롯 머신와 지그재그 모두 중저가 가격의 제품으로 MZ세대를 겨냥한 여성 패션 플랫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일본 슬롯 머신보다 지그재그의 객단가(1인당 평균 구매 금액)가 높다. 일본 슬롯 머신는 평균 3만~4만 원 초반 수준이라면 지그재그는 4만~5만 원대고, 구매전환률이 높은 편이다. 다만, 일본 슬롯 머신는 기존의 셀러를 영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플루언서를 셀러로 영입해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지그재그는 기존의 쇼핑몰을 입점시켜 커머스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차이가 있다.

패션 넘어 웹툰까지…종합 플랫폼으로의 확대
지난해 에이블리의 견조한 실적은 상품 카테고리를 패션에서 뷰티·푸드·라이프까지 확장한 데 있다. 특정 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버티컬 플랫폼에서 여러 카테고리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덩치를 키운 것이다. 특히 지난해 푸드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대비 220%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에이블리는 패션 부문에서 충성 고객을 확보한 뒤 화장품·생활용품·가구·디저트까지 진출하며 종합몰로 진화했다. 이제는 쿠팡·네이버와 경쟁하는 셈이다. 심지어 웹툰과 AI(가상 대화·이미지 생성) 서비스도 추가했다.
이러한 버티컬 커머스의 확장적 전략이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간 경계를 무너뜨려 무한경쟁으로 접어들게 한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에이블리의 방향성과 정체성이 흐려진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에이블리는 무엇을 팔고자 하는 플랫폼인가?’라는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다.
쿠팡은 커머스 플랫폼의 확장의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쿠팡은 커머스 플랫폼으로 시작해 ‘쿠팡이츠’라는 배달 플랫폼과 ‘쿠팡플레이’라는 OTT플랫폼을 만들어 냈다. 쿠팡은 플랫폼을 분리하는 방식이었다면, 에이블리는 웹툰과 AI 서비스가 하나의 앱에 담겨 있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매출 상승을 보여주며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줄지라도, 장기적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쉬인·테무·알리, C커머스 공세 본격화
여기에 더해 중국계 이커머스인 C커머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모바일 앱 분석 서비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계 패션 플랫폼인 쉬인(SHEIN)이 한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MAU 100만 명을 돌파했다. 쉬인은 초저가 상품을 앞세우면서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쟁 상대는 쉬인만이 아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최근 한국에 물류센터 입점을 예고한 징둥닷컴까지 있다. 일본 슬롯 머신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C커머스를 상대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초저가 제품을 내세우는 C커머스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에이블리는 커머스 분야 1위의 위상을 다지고 있는 쿠팡·네이버의 패션 카테고리 확장, 경쟁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 초저가 전략의 C커머스까지. 경쟁 과열 속에서 긴장을 놓칠 수 없다. 또 늘려 놓은 신사업으로 발생한 자본잠식 상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결국, 에이블리가 안정적으로 영업현금흐름(OCF)을 창출해 외부 차입이나 증자 없이도 운영·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는 흑자 체력이 있는 기업인가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에이블리·4910·아무드 플랫폼을 운영하는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올 들어 지난해와 달리 흑자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거래액과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증가하면서 영업이익은 흑자를 기록했다. 신사업인 4910과 아무드 또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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