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민정 칼럼니스트] 'GS 아트센터'가 몇 년간 비어있던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자리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개관을 기념해 첫 기획공연 시리즈 '예술가들' 중 스페인 출신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Marcos Morau)와 그의 무용단 라 벨로날(La Veronal) 컴퍼니의 '파시오나리아(Pasionaria)'가 올려졌다.
현대무용계의 '슈팅스타'라 불리며 주목받는 마크코스 모라우는 무용계에서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사실 춤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과 연극, 문학과 영화, 그리고 시각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은 예술가다. 그러한 배경은 그가 창작한 2018년 작품 '파시오나리아'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파시오나리아>는 스페인어로 '열정의 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고통', '수난'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을 지닌다. 모라우는 이 이중적 의미를 빌려, 감정을 잃은 미래 인류의 모습을 '파시오나리아'라는 가상 행성을 통해 그려낸다.
이 행성의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움직인다. 상자를 든 배달원, 진공청소기를 미는 등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슬롯 머신 이기는 법 없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8명의 무용수들의 몸은 균형보다는 불균형, 유려함보다는 경련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모라우는 말한다. "우리는 이상한 것들이 새로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이 작품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철저히 배제한다. 무표정한 얼굴, 인위적으로 설계된 조명, 기계적인 몸짓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준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야말로 모라우가 표현하고자 한 감정의 부재다. 감정이 사라진 세계를 보여주어 관객은 점점 혼란에 빠지지만, 바로 그 감각을 통해 감정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작품이 의도한 '감정'의 자극이다.
기술은 인간을 더욱 효율적이고 빠르게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과 연대, 그리고 진정한 소통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으며, 말하지 않고, 무엇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반응'할 뿐이다.
모라우는 이러한 상황을 '고의적인 소외'로 그려낸다. 관객은 무용수들의 감정 결핍을 보며 공허함에 빠지게 되지만, 동시에 '나 자신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이처럼 파시오나리아는 무대를 통해 인간 본성의 상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춤은 이야기보다 강력한 이미지다.
모라우의 안무는 철저히 시각 중심이다. 그는 춤을 언어보다 강력한 '이미지의 구상'으로 여긴다. 모라우는 라 베로날 컴퍼니 무용수들과 함께 수년간 연구한 끝에 개발한 안무 기법인 '코바(Kova)'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핀란드어로 '단단한'이라는 뜻의 '코바'는 비논리적이고 단편적인 움직임을 조합해 만들어낸 새로운 신체 언어로, 로봇을 연상케 하는 긴장도 높은 동작을 활용하면서 감정 표현과 시선을 섬세하게 통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네모난 조명 틀 안, 마치 텔레비전 속 장면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그 안에서 무용수들의 손끝 하나, 발끝 하나까지 계산된 듯한 동작은 인간의 숨결보다 프로그래밍 된 알고리즘을 떠올리게 된다.
몸을 크게 휘둘리거나 순간적으로 멈추는 강약 조절, 빠른 회전과 느린 동작에도 무용수들의 표정과 호흡은 인간적인 흔들임이 없다. 특히 두세 명의 무용수가 협무(協舞)를 할때, 각자의 동작은 마치 한 대의 정교한 로봇처럼 맞물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지는 움직임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춤'이라기보다 '작동'을 연상하게 한다.
음악적 구성 또한 상징적이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으로 시작해 마태 수난곡으로 끝나며, 그 사이를 신시사이저의 레트로-퓨처리즘적 사운드로 가득 채운다. 과거와 미래, 종교적 엄숙함과 기술적 차가움이 공존하는 이 음악적 구조는 감정 없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더욱 실감 나게 만든다.
모라우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는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감정적 고립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파시오나리아는 단지 미래를 상상하는 SF적 상상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우화에 가깝다. 정보의 속도는 빨리지고, 인간의 교감은 점점 느려지고 있다. 우리는 더욱 연결되었지만 동시에 더욱 고립되어 있다.
<파시오나리아>는 단순한 현대무용극이 아니다. 모라우의 상상력, 연극성과 시각 예술적 미감, 그리고 비판적 시선을 모두 집약한 작품이다. 감정을 제거한 디스토피아 세계는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일 수 있다.
그리고 모라우는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 공허 속에서도 감정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몸이 보여주는 그 낯설고 기이한 감각 속에서 우리는 되묻게 된다. "나는 지금,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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