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우연히 발견한 표지판이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서울로7017’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붙어 있는 어떤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서울수복 작전 시 서울역 시가전지’라는 안내가 쓰여 있었다.
서울시에서 설치한 ‘6.25 전쟁 격전 상흔지’ 안내표지판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는 점령되고 수복하고 또 점령되고 수복하는 공방전이 벌어졌었다. 그러니 서울 곳곳에 격전지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접근하기 좋은 곳에 설치된 ‘6.25전쟁 격전 상흔지’를 다녀왔다.

한강 방어선, 노량진 전투와 흑석동 전투
노량진의 ‘사육신공원’에 가면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거기에 표지판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한강과 지형지물을 설명한 표지판이고 다른 하나는 6.25 전쟁 발발 초기 노량진 일대에서 ‘한강 방어선 전투’가 벌어졌다는 걸 기록한 표지판이다.
‘한강 방어선 전투’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북한군이 한강을 건너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량진과 영등포 등 한강 유역에서 벌인 전투를 말한다. 개전 초 서울이 함락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6일 동안 저지해 미군이 지상군을 파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 전투다. 이를 위해 흩어진 국군을 재편성해 치열하게 맞섰다.
당시 노량진 일대는 한강 방어선의 최전선이었다. 지금의 노량진 수원지와 노량진수산시장, 그리고 사육신묘가 자리한 ‘39고지’에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인근의 흑석동 일대도 한강 방어선에 포함된 지역이었다.

흑석동에서 한강대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한강 변 언덕 위에 ‘효사정 공원’이 있다. 그곳에 오르면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데 흑석동 일대가 6.25 전쟁 발발 초기 격전지였음을 알리는 표지판도 설치되어 있다.
당시 흑석동 일대에 방어선을 친 국군은 이촌동에서 효사정 방향으로 도강하는 북한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사육신공원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한강철교만 보이고 한강대교는 아파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효사정에서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모두 보인다. 한강대교는 한국전쟁 초기에 폭파된 한강 인도교 자리에 들어선 교량이다.
개전 초 북한군이 슬롯 카지노까지 밀려오자, 정부는 피난하게 되고, 국군은 북한군이 한강을 건너는 것을 저기 위해 1950년 6월 27일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다. 하지만 폭파 당시 인도교를 지나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런 큰 희생을 발판으로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한 국군은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다.
북한은 원래 미군이 병력을 증파하기 이전에 국군을 섬멸해 최대한 이른 시기에 전쟁을 종결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국군이 한강에 방어선을 치고 전투를 벌이며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이러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미 극동군 총사령관인 맥아더에게 미군의 참전에 관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전투였다. 그래서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8군이 파병되었다.
하지만 큰 희생이 뒤따랐다. 사육신공원과 효사정 공원 사이에 있는 노들나루 공원에 가면 이런 희생을 엿볼 수 있는 현충시설이 있다. 한강 방어선 전투에서 전사한 1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한강방어선전투 전사자 명비’가 그것이다.

슬롯 카지노 수복을 위한 전투가 벌어진 슬롯 카지노역과 연희동
한국전쟁 개전 초 슬롯 카지노이 함락되고 낙동강 방면까지 전선이 밀린 후 전황을 뒤집은 작전이 있었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이다. 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과 미군 해병대는 슬롯 카지노로 향하는 여러 방면으로 진격했다. 슬롯 카지노 서부 외곽에서는 연희동 전투가 치열했다. 그 격전의 흔적이 기념비로 남아 있다.
연희동을 지나는 성산로에는 ‘연희104고지. (구)성산회관’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 대로변에서 주택가 골목을 따라 70m만 들어가면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연희동 104고지가 나온다. 그곳에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가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게 된 북한군은 서울을 사수하기 위해 연희동 104고지 등에 저지선을 설치했다. 하지만 국군 해병대가 1950년 9월 21일 치열한 백병전 끝에 104고지를 탈환했다.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는 말 그대로 연희동 주택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전적비 주변 나무 사이로 이웃한 주택들이 보인다. 전적비에는 1982년 9월에 다시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원래는 '전방의 바위'에 전적비 비문을 새겼다고 한다.
그 ‘전방의 바위’는 전적비 공원과 주택 사이 나무가 울창한 숲에 숨어 있었다. 옛 전적비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냥 숲속에 숨은 바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연희동처럼 서울의 서쪽 외곽에서 도심 방향으로 진입했는가 하면 도심에서도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9월 26일에는 국군 해병대 제2대대가 서울역 앞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당시 남대문 지하도와 대한여행사(현 남대문경찰서) 옥상에 배치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다.
결국, 서울역 광장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의 격전을 옛 서울역 건물인 ‘문화역서울284’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서울역 광장에서 ‘서울로7017’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붙어 있는 ‘서울수복 작전 시 서울역 시가전지’ 안내표지판에 기록으로도 남았다.

연희동과 서울역 등 시가전에 힘입어 1950년 9월 26일 서울은 수복되었다. 하지만 다음 해 초 1·4후퇴로 다시 서울이 점령되었고 공방을 벌이며 한국전쟁은 장기화하였다. 그렇게 1953년 7월 27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2020년 8월 서울시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 격전 상흔지’ 50곳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중 안내표지판이 없는 31곳에는 2022년까지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렇게 ‘한강 방어선 노량진 전투지’와 ‘한강 방어선 흑석동 전투지’ 안내표지판이 2020년에 설치됐고, ‘서울수복 작전 시 서울역 시가전지’ 안내표지판은 2023년에 설치됐다.
서울시 자료를 참고하면 2025년 6월 13일 현재 ‘6.25 전쟁 격전 상흔지’ 50곳 중 41곳에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안내표지판 설치 작업은 계속 추진된다고 한다. 관심이 없으면 눈에 잘 띄지 않을 표지판이지만 잊혀 가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느낄 수 있는 의미 깊은 기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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