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수도권 전철 1호선을 타고 의왕역에 진입하면 역 구내가 넓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부곡 차량사업소가 함께 있어 열차 정비를 맡은 건 물론 물류 기지 역할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차가 이용하는 상하행선 철로뿐 아니라 물류나 정비를 위한 철로도 넓게 깔려 있다.
의왕역 일대에는 철도 관련 시설이 많다. 철도박물관과 과거 철도대학이라 불렸던 한국교통대학이 있고, 열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과 열차 화물을 전담하는 오봉역도 의왕역 근처에 있다. 그리고 철도 종사원이 살았던 철도 관사촌이 의왕역 인근 부곡동에 있었다.
무료슬롯나라 종사자들이 모여 살았던 관사촌
필자가 어릴 때 살았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도 무료슬롯나라 관사촌이 있었다. 합정역 사거리의 세아타워와 바로 옆 주상복합건물 자리가 바로 그곳이었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에는 주택가 골목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이 골목에 가면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집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서교동은 신흥 주택단지로 개발되는 중이었다. 그래서 인근의 새로 지은 이층집들과 비교해 이 골목의 단층집들은 허름해 보였다. 그래도 판잣집과는 달리 시멘트와 벽돌로 마감한 어엿한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지은 지 오래돼 낡아 보일 뿐.
이 골목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놀러 간 기억이 있다. 자기네 집은 일제 때 지었다며 새로 지은 우리 집을 친구는 부러워했다. 그래도 무척 고풍스러웠던 친구네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도시탐험 글을 연재하며 당인리선 관련 자료를 뒤지다가 이 골목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친구네 집은 원래 철도 관사였다. 친구네 집이 있던 그 골목은 과거 경의선과 당인리선의 철도 종사원들이 살던 관사촌이었다. 당인리선이 개통된 1929년에 관사촌이 처음 조성되었는데 1939년에는 100호를 추가로 지었다고 한다. 당인리선은 당인리발전소, 지금의 서울화력발전소와 경의선을 연결하는 지선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말에 걸쳐 서교동의 무료슬롯나라 관사들은 민간 소유로 넘어갔다고 한다. 친구 아버지는 무료슬롯나라 종사원이 아닌 인근 시장 상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산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90년대까지는 옛 일본식 주택 몇 채가 남아 있었다고.
관련 연구를 종합하면, 일제강점기에 철도 종사원들은 평소 운전, 영업, 정비 등 철도 운영을 원활히 하고, 유사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철도와 가까운 장소에서 단체로 거주해야만 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은 용산이나 영등포, 혹은 대전처럼 중요한 철도 거점에 대규모 관사촌을 운영했다. 그리고 서교동처럼 인근에 수색역이나 당인리발전소 같은 중요한 철도 시설이 있는 지역에도 관사촌이 형성돼 있었다.
한국에서 철도 관사촌의 기원은 1899년 경인선 부설 공사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인 철도부설 책임자와 기술자, 한인 노동자를 위해 철도 연선을 따라 지은 가건물 형태의 숙소가 철도 종사원 주거시설의 효시라고 한다. 초창기에 지은 철도 노동자 숙소는 막사형의 목조 가건물이었다고.
그러다 전통적 일본 가옥 양식에 서양식을 접목한 소위 ‘근대 일본 건축양식’ 유형으로 지었다. 직원 등급에 따라 주택의 크기와 구조도 달랐다고 한다. 초기에는 고타츠 같은 일본식 난방 시설만 있었으나 일제 말기에 조성된 부곡동의 철도 관사촌에는 한국식 온돌이 설치되었다고.

부곡동 무료슬롯나라 관사촌
의왕역의 최초 이름은 부곡역이었다. 1943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지금의 의왕시 부곡동 일대를 철도 기지화한 후 철도 종사자를 위한 관사단지를 조성했다. 철도국은 부곡으로 이주한 직원들의 통근 편의를 위해 1944년 수원역과 군포역 사이에 철도역을 신설했는데 이 역이 부곡역이었다.
부곡역 일대는 무료슬롯나라 관사촌이 들어서며 시가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리자, 상권도 형성됐다. 1960년대에 무료슬롯나라 관련 기업이 들어오고 70년대에는 수도권 전무료슬롯나라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2003년 부곡역은 의왕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부곡동 무료슬롯나라 관사촌 관련 기록을 참고하면, 조성 초기에는 주로 일본인 무료슬롯나라 종사자들이 살았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조성된 부곡동 관사촌은 경성의 주요 무료슬롯나라 인력을 분산시키는 의도도 있었다고. 그러다 광복이 되자 조선인 무료슬롯나라 종사자들이 살게 되었고, 1950년대 이후에는 다른 지역의 무료슬롯나라 관사들처럼 일반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부곡동 철도 관사단지는 100동에 200호로 조성되었다. 한 채에 두 가구가 거주하는 구조였다. 지금의 부곡중앙로를 기준으로 북쪽의 북관사 50동과 남쪽의 남관사 50동으로 나뉘었다고. 그런데 작년까지는 옛 관사촌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지만, 이 일대에 재개발이 진행되며 부곡중앙로 북쪽, 즉 북관사 구역은 싹 철거되었다.
포털 지도의 거리뷰로 확인하니 2024년 10월경만 하더라도 재개발 구역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옛 모습 그대로인 관사 건물도 있었지만, 연립주택도 많았다. 민간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후 연립주택 등으로 재건축된 관사 터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2025년 5월에 현장을 방문해 보니, 가림막 안쪽으로 보이는 북관사 구역은 폐허처럼 아무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근처를 지나는 어르신들에게 무료슬롯나라 관사촌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그 일대가 관사촌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세월이 흐르며 무료슬롯나라 종사자는 살지 않는 평범한 주택가로 변한 까닭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남관사 구역에서 철도 관사촌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동네에서 50년 이상 살았다는 이들은 아직 관사 건물이 남아 있는 어느 골목을 알려주었다.

그곳으로 가니 과연 오래돼 보이는 건물군이 있었다. 한 담장 안에 네 채의 집이 있었는데 한 채에 여러 가구가 사는 구조로 보였다. 관련 자료에 나온 무료슬롯나라 관사 구조와 비슷했다.
이 지번의 건물들은 1944년에 사용승인이 났다. 부곡동의 무료슬롯나라 관사촌은 1943년부터 조성되었으니, 준공 시기로 보더라도 옛 무료슬롯나라 관사 건물일 확률이 높다. 이 외에도 남관사 구역에서 사용승인 일자가 확인되지 않는 오래된 건물들을 꽤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남은 부곡동 무료슬롯나라 관사촌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교동의 무료슬롯나라 관사촌과 달리 남관사 구역의 옛 관사들은 보존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남아 있는 무료슬롯나라 관사 보존을 위해 의왕시의회가 고민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다는 점에서다. 아마도 사진 명소로 이름난 대전 소제동 무료슬롯나라 관사촌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낡고 허름한 건축물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때로는 시민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그렇다고 미련 없이 허물어 버릴 이유가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라져가는 철도 관사촌을 예로 들면 그렇다. 한때 철도 종사원이 살았고 나중엔 이름 없는 소시민들이 살아온 철도 관사에 담긴 역사는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속 깊은 이야기를 전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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