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구치소와 청계산. 의왕시의 이웃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의왕시에 대한 첫인상을 물어봤을 때 나온 반응이다.
안양시 인덕원역 인근의 집에서 성남시 판교의 직장을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한 지인은 서울구치소에 유명 정치인들이 수감되었던 시기가 떠오른다고 했고,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다른 지인은 운중동에서 청계산을 올라 국사봉을 지나니 의왕시 구간에 진입했던 경험이 떠오른다고 했다. 서울구치소가 의왕시에 있고 청계산의 일부 영역이 의왕시에 걸쳐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 범위 안에서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인식하기 마련이다. 지인들 사례에서 보듯 공간 인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원시나 군포시에 사는 지인들은 의왕시를 야마토 슬롯와 관련 깊은 도시라고 여기고 있었다. 전철을 타고 의왕역 일대를 지나가 보면 그 의미를 잘 알 것이라며.
특히 의왕시의 행정동인 부곡동에는 지난 글에서 다룬 철도 종사원 관사 터 외에도 한국교통대학교와 야마토 슬롯박물관 등 철도 관련 기관과 철도 물류 기지가 있다.
한국교통대학교와 야마토 슬롯박물관
경기도 의왕시 월암동(행정동은 부곡동)에 있는 한국교통대학교(의왕 캠퍼스)는 철도대학교와 충주대학교가 합병한 국립대학교다. 두 대학 중 철도대학교의 연혁을 살펴보면 1905년에 설립된 ‘철도 이원 양성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후 다양한 이름과 학제로 기관사 등을 양성했다. 그리고 1925년에 설립된 ‘철도 종사원 양성소’라는 교명도 눈에 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철도원 삼대>를 읽었다면 이 학교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소설 주인공인 ‘이진오’의 할아버지 ‘이일철’이 용산에 있던 ‘철도 종사원 양성소’를 졸업해 기관사로 일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 종사원 양성소는 3년제였고 고등보통학교 2년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시절 철도 기관사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엘리트였다.
철도 종사원 양성소는 광복 후 다양한 학제와 교명으로 개편을 거치다가 폐지를 겪었다. 그러다 1967년 3월에 철도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고졸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1년제 전수부가 설치되었다. 그 후 전수부는 2년제가 되며 1979년에 철도전문대학으로 개편되었는데 1985년에는 용산에서 의왕으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한편, 철도고등학교는 철도청 사업 개선 방안에 따라 1986년부로 폐교했다. 과거 철도고등학교나 철도전문학교 출신들은 장학금 혜택은 물론 철도청 입사에도 혜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수 학생들이 몰리는 학교였다고.
철도전문대학은 1999년에 한국철도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다. 그런데 2005년 한국철도공사가 출범하면서 철도청은 해체되었고, 철도청 관할이었던 한국철도대학은 건설교통부로 이관되었다.
건설교통부는 철도대학을 다른 대학과 통합을 추진했다. 그렇게 충주대학교와 합병했고 2012년부터 한국교통대학교라는 교명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의왕 캠퍼스 외에 충주와 증평에도 캠퍼스가 있다.

한국교통대학교 바로 옆에는 철도박물관이 있다. 의왕역의 부역명(副驛名)이 한국교통대학교이고, 의왕역 앞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이 ‘철도박물관로’이다. 그만큼 두 기관은 의왕역과 가까운 곳에 있다. 박물관은 약 600m 정도, 한국교통대학교는 직선거리로 약 700m 정도 떨어져 있다.
열차에 흥미가 있거나 야마토 슬롯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야마토 슬롯박물관에 가보길 권한다. 자료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각종 열차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체험 학습장으로 인기 높다.
예전에 다뤘던 협궤열차를 야외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는데 ‘파시형’과 ‘미카형’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소설 <철도원 삼대>에도 등장하는 증기기관차 유형들이다.
실내 전시장에는 철도에 얽힌 역사와 관련 기술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모형 기차가 운행되는 철도 디오라마 전시실과 전동 열차 운전을 체험할 수 있는 운전 체험실이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야마토 슬롯 물류의 중심 오봉역과 의왕 ICD
의왕역 인근의 이동(행정동은 부곡동)에는 오봉역도 있다. 많은 이에게는 낯선 역명일 텐데 화물 열차만 취급해서일 것이다. 주변을 지나가도 산이나 구조물에 가려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도로 보면 이 일대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수도권 전철 1호선 당정역과 의왕역 구간의 동쪽에 선로들이 보이는데, 그곳에 오봉역이 있다.
오봉역은 1983년에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 ICD)로 조성되었다. 1992년에는 의왕역으로 역명을 변경했다가 2004년 부곡역이 의왕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면서 다시 오봉역으로 역명을 환원했다.
오봉역은 수도권 철도 물류의 종합터미널이다. 그래서 오봉역 인근 도로에는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트럭들로 종일 붐빈다. 이들 화물 트럭들은 의왕 ICD 제1터미널이나 제2터미널로 향한다.
ICD(Inland Container Depot)는 항만처럼 전문시설을 갖추고 수출입 화물의 운송, 보관, 하역, 통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륙에 자리한 수출입컨테이너기지를 말한다. 주요 물류회사들은 물론 안양세관이 의왕 ICD에 입주했다.
철도 물류 중심의 컨테이너기지인 만큼 의왕 ICD의 두 터미널에는 선로도 연결되어 있다. 제1터미널에 8개의 선로가, 제2터미널에 3개의 선로가 전국으로 향하는 철도망과 연결되어 있다.

오봉역은 시멘트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오봉역 외곽에 시멘트 사일로 여러 개가 보이는데, 사일로에 쓰인 회사명으로만 보면 한국의 주요 시멘트 회사가 모두 오봉역을 통해 물류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여주듯 인근에는 ‘양회기지 삼거리’라는 지명도 있다.
물류업 종사자나 철도 마니아 아닌 이들에게는 낯선 역명인 오봉역이 뉴스의 중심에 오른 적이 있다. 2022년 11월 오봉역 구내에서 안타까운 사망 사고가 벌어졌었다.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이 법에 따라 사업장 안전 확보 의무가 있는 한국철도공사 법인과 당시 사장 및 안전관리 책임자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조사와 수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한국철도공사의 업무 매뉴얼대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한편, 21대 대선에서 노동권 보호,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 등과 관련한 공약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법으로 여기는 후보도 있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행사하기에 따라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도, 기울어진 세상의 균형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투표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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