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호 칼럼니스트] 난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세 시나 네 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그날의 일을 시작한다. 이런 생활 패턴을 유지한 지 몇 년 됐다.
경기도 성남의 어느 산 아래에 자리한 내가 사는 동네는 조용한 편이다. 빌라가 늘어선 주택가라 아파트와 비교해 생활 소음이 현저히 적다. 바깥이 시끄럽다면 까치나 물까치가 몰려다니는 소리고, 여름이면 매미가 그나마 시끄러운 편이다. 그래도 새벽이면 고요하다. 나직한 풀벌레 소리 정도나 들릴까.
그런데 새벽 4시경이면 우리 동네의 정적은 깨지기 시작한다. 1톤 트럭 소리다. 새벽 배송이 시작되는 신호. 우리 집 계단이 울린다. 우리 집 아래층은 새벽 배송 단골이다. 나는 간혹 양탄자 배송의 손님이 된다. 전날 저녁에 주문한 책이 새벽 5시경이면 우리 집에 도착한다.
오전이면 글쓰기로서 그날의 일은 마무리된다. 오후엔 취재 등을 위해 외출하거나, 숲길을 걷거나, 동네 산책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한 택배시큐리티 슬롯다. 큰 키에 깡마른 체형인데 인상적인 건 표정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깊게 남는 얼굴이다.
어느 날은 이 사람을 관찰하기도 했다. 차를 세우고 내려 상자를 꺼내선 건물에 들어가고, 층계를 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나 싶더니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차를 운전하고 얼마 안 가 다른 건물 앞에다 다시 차를 세우고...
배달 과정에 군더더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아마도 배송 정보가 떠 있을) 핸드폰 화면과 택배 상자로만 향했다. 그제야 그의 무표정이 뭔가에 몰입하고 있는 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물량을 소화하려는. 아마도 경력이 오랜 택배기사인 듯했다.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때가 많은데 이 택배시큐리티 슬롯는 뭔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마침,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목사님의 택배일기>였다.
목사님은 왜 택배시큐리티 슬롯가 되었을까?
나는 개신교 신자였다. 모태신앙이었고 서울 강남의 한 대형 교회에서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쳤다. 그러다 그 교회에서 함께 성장한 친구가 목사가 되자 그가 개척한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대형 교회와 개척교회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단 생존이 문제다. 적은 수의 교인이 낸 헌금으로 교회를 유지해야 했다. 목사 가족의 생활은 뒷순위였다. 친구이자 목사는 대놓고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평일에 뭔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실천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런데 <목사님의 택배일기>의 저자 구교형 목사는 용기 있게 나섰다. 그렇게 택배시큐리티 슬롯가 되었다. 생활비를 벌어 살림에 보태고자, 택배 손님들을 만나며 사람을 더욱 알고자.
구교형 택배기사가 맡은 배달 구역은 서울 구로구의 가리봉동 일대였다. 가리봉동은 과거에 구로공단 인근에 자리한 공장 지대이자 이들 공장 노동자들의 숙소인 일명 ‘벌집촌’이 들어선 지역이었다.
옛 구로공단이 ‘서울 디지털 국가산업단지 1단지’로, 옛 가리봉공단이 ‘서울 디지털 국가산업단지 2단지’로 이름이 바뀌어 첨단 아파트형공장이 들어섰지만 두 단지 사이에 자리했던 가리봉동 벌집촌은 지금도 옛 구획 그대로 남은 골목이 많다. 구교형 택배기사가 맡은 구역이 바로 거기다.
즉 배송 난도가 큰 구역이었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에 한 집에도 여러 세대가 사는 주택 구조라 물건 주인을 찾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여름이면 아이스박스가, 겨울이면 절임 배추가, 명절이면 선물 배달이 밀려드는 것도 어려움을 배가시켰다고.
<목사님의 택배일기>는 일요일에는 목사로, 평일에는 택배시큐리티 슬롯로 사는 50대 남자가 세상의 뒤안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목사가 품위 떨어지게 세속의 일을 한다고 비난하겠지만 교인들의 피, 땀, 눈물이 밴 헌금으로 품위를 유지하며 고고한 척 세상의 어른 노릇을 하려는 그런 목사들보다는 건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교인들이 평일에 어떠한 일상을 살다가 일요일이면 교회에 출석하는지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목사님의 택배일기>는 한 종교인이 치열한 세상에서 삶의 이치와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신앙고백 같기도 했다.

북경의 택배시큐리티 슬롯가 열아홉 개의 일자리를 전전한 이유는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는 페이스북이 추천했다. 일종의 알고리즘이 작동했는지 <목사님의 택배일기>를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후부터 페이스북에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관련 게시물과 홍보가 뜨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9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올해의 책 및 올해의 저자로 선정됐고 2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며. 그리고 전 세계 16개국에서 판권 계약을 했다며. 마침, 우리 동네 택배시큐리티 슬롯를 관찰하는 중이기도 해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에 저자의 뜨끔한 말이 있었다. “기자들은 택배기사를 인터뷰해서 이 산업의 포괄적인 면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자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내게 들려주는 말로 다가왔다. 나 같은 사람이 며칠 정도 직접 택배 배달 현장을 견학하거나 경험해 본다고 해서 ‘생각, 태도, 관점, 감정’까지 실제 택배기사와 같아지는 건 아니니까.
이 대목에서 저자인 ‘후안옌’의 깊이와 성찰이 느껴졌다. 과연 책장을 넘길 때마다 택배기사인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사유가 글로 나타났다. 사소할 수도 있는 순간들이 기록되었는데 마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설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저자가 북경에서 일했던 택배시큐리티 슬롯는 그의 열아홉 번째 일자리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북경의 택배시큐리티 슬롯입니다> 저자는 일자리를 찾아 중국의 여러 도시를 전전한 일자리 노마드이기도 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호텔 직원을 시작으로 경비원, 의류 가게 운영, 자전거포 직원 등 열일곱 개의 일자리를 경험한 후 광저우에서 열여덟 번째 일자리인 택배 상하차 업무를 거쳐 베이징에서 열아홉 번째 일자리인 택배기사로 일하게 되었다.
저자 ‘후안옌’은 택배기사로 일하며 업무에 적응해 가는, 혹은 변화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본성보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심해의 물고기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막의 동물은 갈증을 잘 참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내가 처한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라며.
저자는 자기 현실만 고백하지 않는다. 그가 일한 현장에서 마주친 동료 노동자들과 고객들을 관찰한 대목들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닐 것이며, 현재를 기꺼이 희생하게 하는 ‘삶의 또 다른 부분’이 있을 거라 그는 생각한다. 때로는 진상을 부리는 고객들의 사정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고.
이렇듯 저자는 고된 노동 가운데에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건 물론 타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내면과 삶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런 대목들에서 내가 동네에서 마주치곤 하던 그 택배시큐리티 슬롯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단지 그가 택배를 나르는 모습만 봤을 뿐 그가 일을 마친 후에는 어떤 일상을 맞이하는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 일상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보지 못해 모를 뿐.
그렇다면 <목사님의 택배일기>와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읽은 후 택배기사를 대하는 나의 모습은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택배기사 시점에서 나라는 고객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는 생각해 봤다. 엘리베이터 없는 집에 사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