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되고 나비가되고] ② 오 마이 갓! 장수야마토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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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되고 나비가되고] ② 오 마이 갓! 장수야마토 슬롯
  •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
  • 승인 2025.06.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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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소장(농합박사)
이강운 소장(농합박사)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 여름의 들머리에 섰다. 아직 6월 초인데 벌써 한낮의 열기로 숨 막힌다. 잡초와의 전쟁, 진정한 싸움이 시작되니 숨이 더 막힌다. 

사람들이 특별히 키우지 않는 풀을 ‘잡초’라는 대명사로 대충 묶어 부르지만 잡초는 위대하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물을 주지 않아도 토양이 거칠어도 거침없이 자란다.

확산 속도도 빠르고, 강인하다. 6월 뜨거운 열기를 받아 무수한 잡초들이 쑥 올라와 주변이 온통 풀밭이다. 숲이 시퍼렇다. 

뿌리째 뽑지 않으면 반나절만 지나도 다시 고개를 드는 풀을, 수십 번 되짚어가며 뽑아내는 일은 단순한 노동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초제로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대부분 생물들, 특히 곤충의 서식처와 애벌레의 먹이식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풀도 가려가며 매야 한다. 

구릿대는 산호랑야마토 슬롯 애벌레의 먹이 식물이고, 냄새나는 잡초로 분류되는 쥐방울덩굴은 사향제비야마토 슬롯나 꼬리명주야마토 슬롯 에벌레가 먹는 식물이므로 피하고, 기린초는 귀하신 몸 멸종위기종 붉은점모시야마토 슬롯 애벌레 특별식이니 절대 훼손해선 안 된다.

대표적인 잡초 ‘쑥’과 외래종이라고 천대받는 ‘환삼덩굴’도 작은멋쟁이 나비와 네발나비가 그 잎 아래에 알을 낳는 식물이므로 무조건 없애 버리기도 힘들다.

산호랑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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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제비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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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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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멋쟁이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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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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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풀과 싸워왔다. 멸종위기종을 증식, 복원하고 곤충생태를 연구하는 연구소에서는 절대 제초제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손으로 뽑고 낫으로, 예초기로 베어냈지만 완벽하게 풀을 없앨 수 없었다.

결국 허리만 휘고 손가락마다 관절염만 생기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므로 ‘풀과 싸우지 않고 풀을 억제하는’ 방법’인 잡초를 덮어버리기로 했다.  

식물 밑 둥 주변에 우드 칩으로 땅을 덮는 피복 방법은 햇빛이 차단돼 잡초가 잘 올라오지 못한다. 올라오더라도 가볍게 쏙쏙 뽑으면 먹이식물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고 수월하다.

잡초도 잡지만 동시에 토양 수분이 유지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미생물이 이 유기물들을 분해해 땅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 단순한 잡초 억제뿐만 아니라 땅을 살리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는 생물학적 접근이었다. 

우드 칩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두께로 나뭇가지를 잘게 자르는 장비를 구입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다 부숴버린다는 파쇄기(wood chipper)는 매우 강력한 기계인 만큼 사고 발생 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위험한 기계작업이 늘어나 무섭기는 했지만 잡초를 줄이는 대가로 생각했다. 

1년 반 전, 전동 가위로 곤충 애벌레 먹이 식물을 자르다가 왼쪽 가운데 손가락을 잘라 한 달간 입원했다. 그 때 병원에서 만난 이관우씨도 파쇄기에 팔이 말려들어가 큰 사고를 경험했던 충주에 살던 60대 농부였다.

이름에 걸맞게 덩치가 산(山)만한 천하장사 ‘관우’였지만 장갑이 파쇄기에 끼이면서 팔이 통째로 말려 들어가니 어쩔 수 없었다. 잘린 부위는 붙이고 피부를 재생하는 큰 부상이라 내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뼈와 신경이 잘리는 소리가 되살아나며 내 일상을 완전 파괴했던 두려움과 공황 상태를 나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은 ‘관우’씨를 보며 조금씩 극복했다. 같은 병실을 쓰며 동병상련으로 컵라면을 끓여먹는 형, 동생 사이가 되었고 끔찍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병원동기’로 가끔 만나 소주 한잔하는 절친이 되었다.  

우드 칩으로 곤충 먹이식물원의 잡초를 덮기 위해 연구소 숲 가장자리에 파쇄기로 잘게 부수어 쌓아둔 두엄 더미를 뒤적이다가 손끝에 물컹한 감촉이 닿았다. 순간 움찔했지만 살짝 꺼냈더니, 오 마이 갓! 정말 웅장한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툭 튀어나왔다. 

장수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장수야마토 슬롯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반짝반짝 윤기 나는 몸에 손바닥만한 엄청난 크기와 몸을 둥글게 말아 탱탱한 상태를 보니 좋은 환경에서 실컷 먹고 잘 컸다. "너는 언제부터 그 안에 있었니?“ ”잘 먹어서 통통한 것 좀 봐“라며 채집하는 아내도 마냥 신이 났다.

지금껏 수없이 봐온 곤충이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낯설고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일단 파헤치기 시작하자 두엄 속에 묻혀있던 오동통한 애벌레가 끝도 없이 나온다.

장수풍뎅이는 어떤 곤충인가? 모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벌레의 긍정적 아이콘이다. 장수풍뎅이를 처음 만난 아이들은 “와, 진짜 갑옷 같아요!” “이 뿔로 싸워요?” 신기함과 경외심으로 연달아 쏟아지는 질문은 자연에 대한 감동 그 자체다. 그 어떤 인공지능 교과서도, 스마트패드도 흉내 낼 수 없는 살아있는 생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장수야마토 슬롯(Allomyrina dichotoma)는 크고 웅장한 뿔, 단단한 갑옷 같은 등딱지, 굵은 앞다리를 가진 모습이 마치 갑옷 입은 무사 같아 붙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야마토 슬롯 종류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곤충이다. 수컷은 머리 위로 끝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진 뿔(dichotoma:두 갈래로 나뉜)이 솟아 나 있으며 상대를 들어 올리는 무기로 사용한다.

애벌레가 큰 개체일수록 뿔은 더 크게 성장하므로 우드 칩 두엄에서 건진 웅장한 애벌레들이 가장 큰 장수풍뎅이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장수야마토 슬롯 수컷. 사진=이강운 소장
장수야마토 슬롯 수컷. 사진=이강운 소장

자연 상태에서 비 맞고 눈 맞은 지 2년. 온도, 습도가 적당히 잘 부식된 두엄은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에겐 최적의 서식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온대에서 난 온대 지역인 남부 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는 장수풍뎅이가 영하 28도까지 내려가는 산 속 연구소에서 월동에 성공하고 대량 발생한 사실은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만드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은 곤충 생활사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도 상승으로 곤충의 출현 시기가 앞당겨지거나 생활사 기간을 단축시키기도 하고 서식지를 북쪽으로 이동하거나 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제껏 서식하지 않던 장수풍뎅이가 한지에 가까운 강원도 깊은 산 속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 정착한 것은 이러한 가설을 실제로 확인 한 의미 있는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선서 후 “기후 위기가 인류를 위협하고, 산업 대전환을 압박한다”며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겠다”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은 ‘녹색’으로 사회를 전환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선거 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진행했던 ‘멸종위기종 대선정책연대 정책협약식’에서 거론되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법과 제도로 지키겠다는 약속으로 믿으니 희망과 기대가 생겼다. 

최 일선에서 정책의 집행 역할을 하는 환경부가 기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생물다양성, 멸종위기종을 실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법으로 환경과 멸종위기종을 지켜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 5일  ‘2025 세계환경의 날’이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28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이며, UNEP와 환경부가 주최·주관했는데 이번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란다.  

환경의 날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자연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다. 그 기억은 손에 올려둔 장수야마토 슬롯 한 마리에서 시작될 수 있다.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이 있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무심히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지구와 생명을 위한 책임 있는 어른이 될 것이므로...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서울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열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야마토 슬롯, 소똥구리, 물장군,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홀로세곤충방송국(Hib)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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