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의 미래항공교통] 독일 블로콥터(Volocopter), 다중회전익 eVTOL의 '펜던트 슬롯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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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의 미래항공교통] 독일 블로콥터(Volocopter), 다중회전익 eVTOL의 '펜던트 슬롯 설계'
  • 김창덕 남서울대학교 빅데이터콘텐츠융합학과 교수
  • 승인 2025.08.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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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남서울대 교수
김창덕 남서울대 교수

[김창덕 남서울대학교 빅데이터콘텐츠융합학과 교수] 미래 펜던트 슬롯교통을 둘러싼 경쟁은 이미 전 세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공역을 개방하며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미국은 FAA 인증을 통해 글로벌 표준을 장악하려 한다. 이른바 저고도 공역 경제, 미국식 표현으로는 로우 알티튀드 에어스페이스 이코노미(Low-Altitude Airspace Economy) 혹은 어드밴스드 에어 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생태계라는 새로운 산업 플랫폼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이제 하늘은 단순히 펜던트 슬롯사의 항로가 아니라, 도시 교통과 물류, 관광, 에너지산업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혁신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독일의 볼로콥터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중국이 속도로 승부를 보고, 미국이 표준화 전략으로 움직인다면 독일은 펜던트 슬롯 설계와 사회적 수용성을 중심에 둔다. 볼로콥터는 고속 장거리보다는 도심 내 단거리 교통에 집중하고, 시민들이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펜던트 슬롯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볼로콥터가 개발 중인 볼로시티는 외형부터 독특하다. 원형 프레임 위에 18개의 전기 로터가 장착된 멀티콥터 구조로 날개(fixed wing)는 없다. 조종사 1명과 승객 1명이 탑승할 수 있고, 직관적인 조이스틱 제어로 운항할 수 있다.

순항 속도는 약 110km/h, 항속거리는 약 35km 정도에 불과하다. 기존 항공기 기준으로 보자면 성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볼로콥터는 장거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이 기체의 목적은 바로 도심 내 단거리 운송에 최적화된 교통수단을 만드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펜던트 슬롯을 입증하는 것이다.

볼로콥터의 출발은 지난 2011년이었다. 당시 세계 최초로 유인 멀티콥터 비행에 성공하며 전기동력 펜던트 슬롯기의 가능성을 열었고, 이후 10년 넘게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독일 교통부 산하 기관을 통해 초경량펜던트 슬롯기 인증 절차를 밟으며 제도권 안에서 신뢰를 쌓아왔고, 2016년에는 임시 감항증명을 획득해 본격적인 시험 비행을 이어갔다.

볼로콥터의 펜던트 슬롯 철학은 단순성과 다중중복으로 요약된다. 로터 하나가 고장 나더라도 나머지가 즉시 보완해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도록 했고, 최대 두 개의 모터가 동시에 작동 불능이 되어도 호버링을 유지할 수 있다. 세 개 이상의 모터가 동시에 고장날 확률은 10⁻⁹ h 수준으로 계산되는데, 이는 대형 여객기의 펜던트 슬롯 기준에 해당한다.

독일 볼로콥터가 개발 중인 2인승 전기 에어택시 ‘볼로시티(VoloCity)’. 18개의 전기 로터를 장착해 단거리 도심 교통에 최적화되어 있다. Volocopter’s VoloCity flying on the testfield in Bruchsal/Germany 사진=블로콥터 홈페이지 캡처
독일 볼로콥터가 개발 중인 2인승 전기 에어택시 ‘볼로시티(VoloCity)’. 18개의 전기 로터를 장착해 단거리 도심 교통에 최적화되어 있다. Volocopter’s VoloCity flying on the testfield in Bruchsal/Germany 사진=블로콥터 홈페이지 캡처

추진 장치뿐만 아니라 모든 핵심 시스템에 이런 철학이 적용되었다. 배터리는 9개 팩으로 나뉘어 일부가 손상되어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비행 제어 컴퓨터는 여러 독립 장치로 구성되어 하나가 고장 나면 다른 장치가 곧바로 제어권을 이어받는다. 각 장치에는 기압계와 자이로, 가속도계, 나침반 등 자체 센서 세트가 탑재되어 있어 단일 센서 고장에도 즉시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이기종 중복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주 비행 컴퓨터와 보조 컴퓨터를 서로 다른 제조사, 다른 하드웨어,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제작해 동일한 오류가 동시에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공통 원인 고장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볼로콥터는 또한 모든 기능과 상황에 대해 “이 기능이 실패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고, 그 결과를 어떻게 극도로 낮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나리오 기반 안전 분석을 수행했다. 수직 상승 중 추진 장치 하나가 상실되었을 때 자세 제어에 미치는 영향, 남은 추진기로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지, 필요한 제어 로직은 무엇인지 단계별로 검토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수많은 시험 비행을 통해 검증된 안전 철학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볼로콥터는 수천 회의 시험 비행을 거듭했다. 2013년 이후 무인 시험만으로 100회를 넘겼고, 이후에는 유인 비행으로 확대했다. 특히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프랑스 퐁투아즈 시험 공역에서 18개월 동안 1,500회 이상의 비행을 수행하며 강풍, 난기류, 센서 오류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자동으로 자세를 안정화하고 로터 손실을 보상하는 능력을 입증했다.

볼로콥터의 시험은 기술 검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 회사는 시민 앞에 기체를 내놓는 전략을 택했다. 싱가포르, 두바이, 헬싱키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개 시연을 실시하며, 대중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했다. 헬리콥터보다 훨씬 낮은 소음을 실제로 보여주면서 “이 기체라면 도심 하늘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쌓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자, 안전에 대한 대중의 체감을 확보하는 임무보증 활동이었다.

인증 과정에서도 볼로콥터는 적극적이었다. 2019년 유럽항공펜던트 슬롯청이 제정한 SC-VTOL 특별조건 마련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자사 기술을 반영했고, 이후 소프트웨어 검증과 구조 하중 시험, 충돌 펜던트 슬롯 요건에 대한 자료를 제출했다. 그 결과 2022년 말에는 디자인 조직 승인을 획득하며 형식 증명에 근접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는 전기 에어택시도 여객기와 동일한 수준의 펜던트 슬롯 검증 체계를 밟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였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항속거리가 35km 수준에 불과해 장거리 운항에는 한계가 있으며 좌석도 두 자리뿐이라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볼로콥터는 4인승 이상의 새로운 모델 개발을 준비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완전자율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조종사 탑승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종사 훈련과 인증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회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항공펜던트 슬롯청과 협력해 간소화된 조종 체계, 이른바 Simplified Vehicle Operations 개념을 개발하고 있다. 복잡한 헬리콥터 면허 대신 보다 간소한 훈련만으로도 운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다중중복 설계를 활용해 정비를 단순화하고 자동화된 유지보수 체계를 도입해 운영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결국 볼로콥터의 사례는 다중 회전익 eVTOL이 여객기 수준의 펜던트 슬롯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8개의 로터, 다중중복 설계, 수천 회의 시험 비행, 공개 시연을 통한 사회적 신뢰 확보는 전기 에어택시도 충분히 펜던트 슬롯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기술적 성과를 넘어, 새로운 교통수단을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합의의 과정이었다.

오늘날 미래 항공교통의 경쟁은 단순히 속도나 항속거리가 아니라, 펜던트 슬롯성과 신뢰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이 속도로, 미국이 표준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독일은 펜던트 슬롯과 신뢰를 선택했다. 접근 방식은 달라도 결론은 같다. 펜던트 슬롯을 입증한 자가 글로벌 표준을 선도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다. 일부 실증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공역 설계, 소음 기준, 버티포트 입지, 통합 관제 체계 같은 제도적 기반은 충분하지 않다.

기체와 배터리, 운항 시스템, 통신·관제에 이르는 기술 주권 전략도 분명하지 않다. 볼로콥터가 보여준 철저한 안전 설계, 사회적 신뢰 구축, 운영 현실성까지 아우르는 접근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미래 항공교통은 단순히 비행체를 만드는 문제를 넘어,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전성과 제도적 준비가 함께 이뤄져야만 가능하다.

김창덕 교수는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연구원 교수, 동대학원 산학협력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남서울대학교 대학원 빅데이터콘텐츠융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UAM(도심항공교통) AAM(첨단항공교통) 과학기술과 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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